덴탈온에서 치카픽까지, 상표를 출원하며 배운 것
명함 상자를 뜯던 날
명함이 도착했습니다. 상자를 열고 한 장을 꺼냈습니다.
서비스명 이름과 제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덴탈온.
10년 넘게 남의 회사 명함을 들고 치과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제 회사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그 명함은 한 번도 쓰지 못했습니다ㅜ

후보는 여덟 개였고, 전부 '덴탈'로 시작했습니다
이름을 정하려고 카톡방에서 각자 후보를 제출 했습니다.
덴탈로그. 덴탈브릿지. 덴탈온. 덴탈존. 덴탈커넥트. 덴탈픽. 덴탈챗. 덴탈링크.
며칠을 두고 봤습니다.
지웠다가 다시 적었습니다.
소리 내어 발음해 보고,
도메인을 검색해 보고, 로고로 그려지는지 상상해 봤습니다.
지금 이 목록을 다시 보면 그때 저희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가 그대로 보입니다.
여덟 개가 전부 '덴탈'로 시작합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그 단어 안에서 살았으니까요.
업계 사람의 고정관념으로 업계 언어로 이름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그게 문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덴탈온을 골랐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치과(Dental)를 켠다(On)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앱을 켜면 치과가 열린다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둘째, '온'에는 따뜻할 온(溫)도 걸쳐 있었습니다. 차가운 가격 비교가 아니라 사람이 설명해 주는 서비스를 만들 생각이었으니 맞아떨어진다고 봤습니다.
셋째, 짧고 부르기 쉬웠습니다. 세 글자에 발음이 걸리는 데가 없었습니다.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로고 디자인을 발주했고, 브랜드 컬러를 잡았고, 명함을 인쇄했습니다.
메일 서명도 바꿨고, 개발 저장소 이름도 그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상표를 알아봤습니다.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였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건 안 됩니다"

상표 출원을 준비하면서 선행 상표를 조사했습니다.
물론 저희도 이전에 조사했습니다. 다만 덴탈온이 없으니 안심하자 라고 쉽게 생각했죠 ...
그런데...
온덴탈, 덴트온이 있었습니다.
같은 두 단어였습니다. 순서만 반대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들은 설명은 이랬습니다.
상표가 비슷한지는 겉모양과 부르는 소리와 뜻을 종합해서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치과 분야에서 '덴탈'이라는 단어는 업종을 그대로 가리키는 말이라 그 자체로는 힘이 약합니다.
누구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온' 하나입니다.
같은 재료 두 개를 순서만 바꿔 쌓아 놓은 셈이니, 소비자가 헷갈릴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AB랑 BA는 같은 걸로 봅니다."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그날 이해한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 이름은 못 씁니다....?


마음이 급했습니다
이름 하나 바꾸는 일이 이름 하나 바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명함은 이미 상자째 책상 위에 있었습니다.
로고 디자인은 절반쯤 진행되어 있었고,
그 로고에 맞춰 앱 화면 시안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소개 자료 표지도 그 이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일정이 걸려 있었습니다.
개발은 이미 돌아가고 있었고, 만나 뵙기로 한 원장님들과의 약속이 잡혀 있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회사로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다시 후보를 뒤졌습니다.
후보군에서 지웠던 이름들을 되살려 하나씩 검색해 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방식으로는 계속 같은 벽에 부딪히겠구나.
'덴탈'로 시작하는 이름을 짓는 한, 저희는 이미 그 단어를 쓰고 있는 수많은 곳들과 계속 겹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후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저희가 서 있는 자리였습니다.
치카하다, 그리고 고르다
우리 6살 아이가 많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치카하다."
아이에게 이 닦자고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어른들끼리도 씁니다.
어디서 배운 적도 없는데 한국 사람이면 다 아는 말입니다.
사전에 정식으로 오른 단어도 아닌데 모두가 알아듣는 말입니다.
저희 직원분이 이 아이디어를 냈을때 다같이 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픽(pick), 고른다를 붙였습니다.
치카하다 + 고르다 = 치카픽.
소리 내어 불러 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치과픽처럼도 들렸습니다.
우연이었습니다.
저희가 계산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붙여 놓고 발음해 보니 그렇게 들렸습니다.
만장일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으로 상표 출원을 마쳤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사고였습니다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치카픽은 저희가 잘해서 나온 이름이 아닙니다.
몰라서 벽에 부딪히고, 급해서 쫓기다가 나온 이름입니다.
순서를 제대로 밟았다면 로고 발주 전에 나왔어야 할 이름이 명함이 인쇄된 다음에 나왔습니다.
잘 모르고 시작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창업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큰 판단은 며칠씩 고민해서 내리는데, 정작 발목을 잡는 것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절차 하나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덴탈온은 저희끼리의 이름이었습니다.
Dental은 영어이고, 동시에 업계 언어입니다.
원장님들과 업체들이 쓰는 말이지 환자가 쓰는 말이 아닙니다.
환자는 살면서 '덴탈'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낼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저희가 만들려는 것은 환자가 치과를 고르는 서비스였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업계 언어였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치카픽이라는 이름은 저희를 제자리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름을 정하고 나서 서비스를 설명하는 문장도 바뀌었습니다.
업계 사람에게 설명하던 말투에서, 환자에게 설명하는 말투로 옮겨 갔습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사고로 얻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적어 둡니다
지금 이름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 저희처럼 명함부터 뽑지 않으셨으면 해서입니다.
첫째, 도메인보다 상표를 먼저 봅니다.
저희는 도메인이 살아 있으면 쓸 수 있는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도메인이 비어 있어도 상표가 막혀 있으면 못 씁니다.
키프리스(kipris.or.kr)에서 무료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회의실에서 후보를 적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둘째, 어순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피해 가기 어렵습니다.
같은 단어의 순서를 바꾸거나, 한 글자를 붙이거나 떼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사는 겉모양만이 아니라 부르는 소리와 뜻까지 함께 보기 때문입니다.
셋째, 업종을 가리키는 단어는 제 것이 되지 않습니다.
'덴탈'이나 '치과' 같은 말은 그 업종에 있는 누구나 써야 하는 말이라 혼자 독점할 수 없습니다.
이름에서 그 부분을 빼고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넷째, 로고와 명함은 가장 마지막입니다.
정확히는 상표 출원 접수증을 받고 나서입니다.
저희는 순서를 거꾸로 밟았고, 절반쯤 진행된 디자인 작업을 잃었습니다.
비용보다 아까운 것은 그 며칠이었습니다.
다섯째, 이름은 안에서 짓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불립니다.
가장 오래 남은 교훈입니다.
저희끼리 회의실에서 예쁜 이름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저희 고객이 평소에 쓰는 말 중에서 골라야 합니다.
여덟 개 후보가 전부 '덴탈'로 시작했다는 것은, 그때 저희가 고객이 아니라 저희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명함 한 통은 아직 서랍에 있습니다
쓰지 못한 덴탈온 명함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가끔 서랍을 열다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럴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합니다.
저희가 얼마나 모르는 채로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모름이 어떻게 결과적으로 더 나은 자리로 저희를 밀어 놓았는지 말입니다.
치카하고, 고릅니다. 저희가 하려는 일이 그 네 글자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김지태. (주)희온컴퍼니 대표.
임플란트 회사에서 10년 넘게 현장 영업을 하며 500곳이 넘는 치과를 담당했습니다.
현재 치과 전용 플랫폼 '치카픽'을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