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카픽 만들기

저희는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전문의 소견 1편)

chikapick 2026. 9. 8. 21:00

"임플란트 얼마예요?"

치과 데스크에서 하루에도 몇 통씩 오는 전화입니다.

실장님이 수화기를 듭니다. 5분 정도 설명하십니다.

 

뼈 상태에 따라 다르고, 뼈이식이 필요하면 비용이 달라지고, 보철 재료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고, 정확한 것은 와서 봐야 안다고 말씀드립니다.

 

상대는 이렇게 답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끊깁니다.

저는 이 통화를 10년 넘게 옆에서 들었습니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작은 희망을 품고 계속 받는 전화입니다.

감정노동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노동입니다.

그런데 정작 더 어려운 쪽은, 그 환자가 실제로 오는 경우입니다.


새우깡을 사듯이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는 순서가 단순합니다.

새우깡이 천 원이라고 하면 가서 천 원에 사면 됩니다.

가격을 먼저 알아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치과 치료는 그런 종류의 소비가 아닙니다.

 

모든 환자는 이미 출발선부터 다릅니다.

 

구강 구조가 다르고, 나이와 성별이 다르고, 그동안 관리해 온 상태가 다르고, 뼈 상태가 다릅니다.

같은 임플란트라는 이름이 붙어도 접근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전화기 너머로 들은 숫자 하나만 알고 옵니다.

 

"OO 임플란트 89만 원입니다."

그 문장만 손에 쥐고 체어에 앉습니다.

 

앉고 나서야 자기 입안 사정을 처음 듣습니다.

뼈가 부족해서 이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옆 치아도 손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금액이 처음 들은 숫자와 달라집니다.

 

그 순간 신뢰가 깨집니다.

이것이 가격만 물어본 환자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성실하게 안내한 실장님의 잘못일까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조의 문제입니다.

 

치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가격 상담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붙여 놓은 구조입니다.

시술 단가가 명확한 곳에서 쓰던 방식을, 사람마다 조건이 다른 영역에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3초 만에 예약이 끝나는 앱을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가격을 띄우고, 낮은 순으로 정렬하고, 버튼 한 번에 예약이 끝나는 앱. 개발도 그쪽이 훨씬 쉽습니다.

사용자 이탈도 적습니다. 어떤 지표로 보든 그쪽이 유리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만든 화면은 반대입니다.

문진에 답해야 하고, 자기 입안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하고, 엑스레이가 있으면 그것도 올리는걸 권장합니다.

 

의도적으로 만든 허들입니다.


문진표는 원장님들께 직접 여쭤서 만들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오래 걸렸습니다.

각 진료 분야의 원장님들을 찾아뵙고, 환자가 처음 왔을 때 실제로 무엇을 물어보시는지를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신지
  • 통증의 양상 - 가만히 있어도 아픈지, 밤에 더 아픈지, 차갑거나 뜨거운 것에 반응하는지
  • 전신 병력 - 당뇨 조절 상태나 골다공증 약제 복용 여부는 발치와 식립 판단에 직접 연결됩니다
  • 복용 중인 약 - 특히 항응고제
  • 흡연 여부
  • 이전 치료 이력

저희가 상상해서 만든 질문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원장님들이 진료실에서 실제로 물으시는 것들입니다.

 

여기에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구강 사진을 올릴 수 있게 했습니다.

엑스레이도 함께 올릴 수 있게 했습니다.

최근에 검진받으신 치과에 요청하시면 휴대폰으로 받으실 수 있다는 안내도 화면에 넣었습니다.

모르셔서 못 받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원장님들께 여쭤봤습니다.

이 정도 정보가 있으면 얼마나 보이시겠느냐고요.

엑스레이까지 올라온 상태에서 문진을 보면 70~80퍼센트 정도는 보인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진단'이 아니라 '소견'이라고 부른 이유

이름을 정할 때 신중했습니다.

이것은 진단이 아닙니다.

치과에서 직접 보고, 두드려 보고, 통증 양상을 확인해야 비로소 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면 너머로 사진과 문진만 보고 진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소견'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방향을 짚어 드리는 것이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이름을 두고 그렇게 오래 고민했던 것 자체가 하나의 신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편하게 만들었더니 생기는 일

문진과 사진 업로드를 거치는 동안, 환자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깁니다.

자기 상태를 스스로 정리하게 됩니다.

 

내가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를 알게 된 상태로 병원에 가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진료에 대한 메타인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치과 문턱에서 가장 불안한 이유는 아파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로 체어에 앉으면 설명을 들어도 절반은 흘러갑니다.

판단할 기준이 없으니 결국 숫자 하나만 남습니다.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환자와 치과 사이에 1차 관계가 먼저 형성됩니다.

성의 있게 설명해 준 곳, 내 상황을 정확히 짚어 준 곳이 생깁니다.

 

그 뒤에 비용이 나오고 예약을 잡습니다.

이미 서로 납득한 상태이기 때문에 실제 치료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순서가 반대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가격을 보고 병원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 다음에 비용을 보는 것입니다.

 

그때 가격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 납득의 마지막 조각이 됩니다.


원장님 입장에서도 달라집니다

지금 원장님들이 컨텍하시는 DB 마케팅은 이름과 전화번호뿐입니다.

그런데 단가는 수만 원에 이릅니다.

그렇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연결조차 쉽지 않습니다.

 

소견을 한 건 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치료 의지가 있는 환자 한 명에게 직접 쓰입니다.

무작위로 뿌려진 번호에 전화를 돌리는 대신, 자기가 가진 지식으로 환자를 설득하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것이 정상적인 선택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년 넘게 제가 본 것은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가장 잘 설명하시는 원장님들이 가장 힘들어하셨습니다.

체어에 앉혀 놓고 15분씩 설명하시는 분들, 뼈 상태가 좋지 않으니 오늘은 심지 않겠다고 돌려보내시는 분들.

그분들이 제일 비싸 보였고, 제일 답답해 보였고, 제일 빨리 지치셨습니다.

 

측정되지 않는 노동은 결국 시장에서 값이 매겨지지 않습니다.

이 기능은 그 기준점을 만들려는 시도였습니다.


저희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었습니다

기획 회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쓴 화면이었습니다.

문진 항목 하나를 넣고 빼는 데 며칠씩 걸렸습니다.

사진을 몇 장까지 받을지, 엑스레이를 필수로 할지 선택으로 할지를 두고도 오래 이야기했습니다.

 

이 기능 하나가 저희 서비스의 중심이었습니다.

나머지 기능들은 전부 이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소개 자료의 첫 장도 이것이었고, 원장님들을 뵐 때 가장 먼저 보여 드리는 화면도 이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 기능 앞에서 예상하지 못한 벽을 만나게 됩니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개발이 어려워서도 아니었고, 원장님들이 반대하셔서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응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확인한 뒤에 저희는 이 기능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서 적겠습니다.

 

 


김지태. (주)희온컴퍼니 대표.

임플란트 회사에서 10년 넘게 현장 영업을 하며 500곳이 넘는 치과를 담당했습니다.

현재 치과 전용 플랫폼 '치카픽'을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