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이야기
지난 글에서 전문의 사전 소견이라는 기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적었습니다.
원장님들께 직접 여쭤 문진표를 만들고, 사진과 엑스레이를 받고, 방문 전에 방향을 짚어 드리는 기능이었습니다.
저희 서비스의 중심이었습니다.
소개 자료의 첫 장이었고, 원장님을 뵐 때 가장 먼저 보여 드리는 화면이었습니다.
그런데......그 기능을 출시 전에 뺐습니다.
벽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기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원장님들의 반대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저희가 만든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 영역인가였습니다.
기획할 때 저희는 이 기능을 '정보 제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단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 드리는 것이니 괜찮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름도 그래서 '소견'으로 붙였습니다.
그런데 검토를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이름을 무엇으로 붙였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로 판단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저희가 만든 흐름을 다시 보면 이렇습니다.
환자가 자기 증상을 적고, 자기 입안 사진과 엑스레이를 올립니다.
그 자료를 의사가 봅니다.
그리고 이 환자의 상태와 필요한 치료 방향에 대해 답을 씁니다.
그 답이 특정 환자에게 개별적으로 전달됩니다.
이름은 소견이지만, 구조만 놓고 보면 환자를 직접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가 개별 판단을 전달하는 형태였습니다.
현행 의료법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비대면 진료는 원칙적으로 열려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예외적인 제도와 시범사업의 형태로 운영되어 왔고, 그 틀 밖에서 민간 사업자가 같은 구조를 만들어 두는 것은 위치가 다릅니다.
저희가 기대했던 '정확한 답'이야말로 문제의 지점이었습니다.
답이 정확할수록 진료에 가까워집니다.
저희는 정확도를 높이려고 엑스레이까지 받았고, 원장님들께 70~80퍼센트는 보인다는 답을 들었을 때 그것을 성과로 여겼습니다. 그 성과가 그대로 위험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바로 접지 않았습니다.
우회할 방법이 있는지부터 봤습니다.
답변을 뭉뚱그리는 방법.
구체적인 판단을 빼고 일반적인 설명만 하도록 제한하는 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기능의 존재 이유가 사라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나오는 이야기를 앱에서 한 번 더 보여 주는 것에 불과해집니다.
면책 문구를 다는 방법.
이것은 진단이 아니라는 안내를 화면마다 넣는 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로 판단된다면, 문구를 붙이는 것으로 성격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의사가 아닌 주체가 답하게 하는 방법.
이것은 더 의미가 없습니다.
판단의 질이 떨어지는 데다, 다른 문제를 새로 만드는 방향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이야기한 끝에 결론이 났습니다.
비틀어서 남기는 것보다 빼는 편이 낫다.
왜 그렇게 판단했나
세 가지 이유였습니다.
첫째, 리스크의 성격이 달랐습니다.
사업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있습니다.
시장이 반응하지 않을 위험, 경쟁에서 밀릴 위험 같은 것입니다.
그런 위험은 감수하는 것이 창업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종류가 다릅니다.
문제가 생기면 저희 회사만 다치지 않습니다.
저희를 믿고 참여해 주신 원장님들이 함께 걸립니다.
그분들은 이 기능이 안전한지 검토할 의무를 지고 참여하신 것이 아닙니다.
저희를 믿고 이름을 올려 주신 것입니다.
둘째,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하려던 일은 환자와 치과 사이의 신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뢰를 회색지대 위에 세울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동안 쌓은 것이 한 번에 무너집니다.
셋째, 출시 전이었습니다.
지금 빼면 자료를 고치고 화면을 다시 만드는 비용으로 끝납니다.
출시하고 나서 빼면 이미 쓰고 계신 환자와 원장님들께 설명해야 합니다. 늦을수록 비쌉니다.
무엇이 남았나
솔직히 매우 아팠습니다.
가장 오래 이야기한 화면이었고, 기획 회의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쓴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빼고 나서 보니, 원래 풀려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희가 풀려던 것은 환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체어에 앉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잘하는 치과가 그 설명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구조였습니다.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이 의사의 개별 답변 하나뿐인 것은 아닙니다.
환자가 자기 상태를 정리하도록 돕는 것, 치과가 자기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 치료받은 내용이 환자 손에 기록으로 남게 하는 것. 방향은 여러 갈래입니다.
기능 하나를 잃었지, 목적을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
자랑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애초에 기획 단계에서 검토했어야 할 것을 개발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확인한 것이니까요.
상표 때와 똑같습니다.
잘 모르고 시작하면 순서가 뒤엉킵니다.
그래도 적어 두는 이유는, 저희가 무엇을 넣었는지만큼 무엇을 뺐는지도 저희를 설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료 영역에서 무언가를 만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기능을 다 만든 뒤가 아니라 그리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름이 아니라 구조로 봤을 때, 지금 이 화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글은 저희가 자문을 거쳐 내린 판단을 정리한 것이며, 법률 해석을 제시하는 글이 아닙니다.
유사한 서비스를 준비하신다면 반드시 개별적으로 검토받으시기 바랍니다.
김지태. (주)희온컴퍼니 대표.
임플란트 회사에서 10년 넘게 현장 영업을 하며 500곳이 넘는 치과를 담당했습니다.
현재 치과 전용 플랫폼 '치카픽'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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