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들어서면 원장님보다 먼저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데스크에 계신 실장님입니다.
10년 넘게 치과를 돌면서, 저는 원장님보다 실장님과 더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영업사원이 원장님을 붙잡고 오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까요.
대기 시간에 데스크 앞에 서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 보입니다.
그리고 오래 본 결과,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실장님이 지치는 이유는 환자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같은 설명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자주 본 장면은 이겁니다.
진료실에서 원장님께 설명을 들은 환자가 데스크로 나옵니다.
그런데 방금 들은 내용을 다시 묻습니다.
실장님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합니다.
환자가 집에 갑니다.
저녁에 자녀분이 전화를 겁니다.
실장님이 수화기를 붙잡고 또 처음부터 설명합니다.
며칠 뒤 환자가 다시 옵니다.
그 사이에 인터넷에서 뭔가를 보고 왔습니다.
실장님이 또 설명합니다.
한 사람의 치료 계획을 설명하는 데 세 번에서 네 번이 들어갑니다.
이게 하루에 열 명이면 서른 번입니다. 환자가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한 명당 들어가는 설명의 횟수가 많아서 힘든 겁니다.
환자가 이해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환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료실에서 나오는 정보의 밀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처음 듣는 단어가 여러 개 나오고, 선택지가 두세 개 있고, 각각 비용이 다르고, 기간도 다릅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환자는 그 순간 몸이 불편한 상태입니다.
이걸 한 번 듣고 소화해서 집에 가서 가족에게 전달하는 건 애초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어르신 환자분들의 경우, 설명은 병원에서 듣고 결정은 집에서 자녀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를 받은 사람과 결정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그 사이에 전달 손실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두 번째 이유 - 상담이 방어전이 됩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광고를 보고 온 환자는 이미 특정 숫자를 갖고 옵니다.
그런데 실제 상담에서는 그 숫자만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사를 해보니 조건이 다르고, 필요한 항목이 추가됩니다.
이 순간부터 상담의 성격이 바뀝니다.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왜 광고랑 다른지를 해명하는 자리가 됩니다.
실장님 입장에서는 억울합니다.
속인 게 아니라 조건이 다른 건데, 환자는 배신당했다고 느낍니다.
그 감정을 데스크에서 혼자 받아냅니다.
원장님이 광고를 결정하고, 대행사가 문구를 쓰고, 그 결과를 실장님이 감당하는 구조입니다.
세 번째 이유 - 하고 싶은 일을 못 합니다
제가 만난 실장님들 중에는 리콜의 중요성을 정확히 아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치료가 끝난 환자에게 몇 달 뒤 연락해서 검진을 안내하는 일.
이게 환자에게도 좋고 치과에도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에 대기 환자가 있고, 전화가 오고, 수납이 밀려 있는데 지난달 환자에게 전화를 돌릴 여유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리콜은 늘 "다음 주에 해야지"로 미뤄지다가 사라집니다.
중요한 일이 급한 일에 밀리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급한 일의 대부분이 아까 말한 반복 설명입니다.
이건 인력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한 명 더 뽑으면 해결될까요.
일시적으로는 나아집니다.
하지만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설명 횟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나눠서 할 사람이 늘어날 뿐입니다.
그리고 인건비는 고정비로 남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문제의 본질은 이겁니다.
진료실에서 나온 정보가 그 자리에서만 존재하고,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
말로 전달된 정보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다시 물어봐야 하고,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만약 환자가 상담 내용을 집에서 다시 볼 수 있다면, 자녀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몇 달 뒤에 확인할 수 있다면 반복의 상당 부분이 줄어듭니다.
실장님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반복 설명에 지친 실장님이 그만두면, 치과는 사람만 잃는 게 아닙니다.
그동안 쌓인 환자 관계를 통째로 잃습니다.
어느 환자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어느 어르신은 자녀와 함께 결정한다는 것, 누가 언제 다시 와야 하는지.
이런 건 차트에 적히지 않습니다.
실장님 머릿속에 있습니다.
그분이 나가면 그 정보도 함께 나갑니다.
새로 오신 분은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합니다.
이건 치과가 감당하는 비용 중 가장 크면서도 가장 계산되지 않는 항목입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것
치카픽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이 이겁니다.
원장님을 위한 서비스도, 환자를 위한 서비스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런데 데스크에서 같은 말을 네 번씩 반복하는 실장님을 위한 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설명이 기록으로 남고, 환자가 집에서 다시 볼 수 있고, 가족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면. 그러면 실장님은 반복 설명 대신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리콜 전화를 돌릴 시간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김지태. (주)희온컴퍼니 대표.
임플란트 회사에서 10년 넘게 현장 영업을 하며 500곳이 넘는 치과를 담당했습니다.
현재 치과 전용 플랫폼 '치카픽'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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